고난은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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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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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2.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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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이집트인들의 불완전한 순종
▲ 이경직 교수

하나님은 교만한 파라오에게 “내일 이맘때이면” 무거운 우박을 내리시겠다고 하신다(출 9:18). 하나님은 ‘내일’이라는 시한을 또 다시 주신다. 교만한 파라오에게 회개할 시간을 다시 주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만이 재앙의 시점을 정할 수 있음을 통해 재앙을 내리시는 분이 그분이심을 드러내신다. 잘못은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재앙의 경고 앞에서도 회개하지 않는 파라오에게 있다. 오늘날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는 선포가 있지만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에 대한 책임은 복음 전파자에게 있지 않고 회개치 않는 자에게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비는 너무나 크다. 하나님은 파라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을 뿐 아니라 “이제 사람을 보내어 네 가축과 네 들에 있는 것을 다 모으라”(출 9:19)고 피할 길을 알려주신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리리니 그것들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출 9:19). 그러나 파라오와 많은 이집트인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했다. 그 결과 그들은 일곱 번째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한 번 경험해야 했다. 그들은 앞선 여러 재앙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지만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파라오처럼 여전히 교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다(출 9:20). 그들은 파라오의 명령을 절대 순종해야 하는 신하들이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파라오는 자신의 왕국이 이런 식으로 허물어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내리실 우박 재앙으로부터 자신의 신하들을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할 때 사탄의 왕국에 속했던 자들 중 일부가 복음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날 때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었고 그 중에는 “수많은 잡족”이 있었다(출 12:37-38). 그들은 파라오와 이집트 신들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폐허가 된 이집트를 떠나 이스라엘 백성에 합류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있지 않고 그들의 탐욕을 채우는데 있었다. 파라오보다 더 강한 신인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집트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리라 믿었기에 그들은 출애굽했다. 일곱 번째 재앙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종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었지만, 하나님의 심판 때문에 입을 피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광야 다베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부추겨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민 11:4)고 울도록 만들었다.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최고 목적을 둘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함께 했던 이집트 사람들처럼 자신의 부와 재물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공동체에 머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 공동체에 고난이 닥치거나 물질이 부족해질 때 그들은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방해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동체가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기보다 원망하고 불평하도록 하는 일에 앞장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걸어가는 동기가 무엇인지는 우리에게 고난이 닥쳐올 때 드러난다.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인 사람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고 고백할 수 있다.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의 기도는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 90:14)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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