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성의 문화칼럼] 유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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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문화칼럼] 유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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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0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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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성지를 찾아서 (32)
▲ ⓒ사순절, 방효성.

3월이 오면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날이 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3.1 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이 보여준 나라사랑의 커다란 울림이었다.

3.1절 독립만세운동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유관순 열사다.

당시 이화학당 재학생으로 병천 아우내 장터로 내려가 손수 만든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던 인물이다. 독립만세운동에서 일본 순사의 총탄에 부모를 잃고, 유관순도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모진 고문과 폭행을 당하고도 불의에 항거하다가 1920년 9월 28일 17세의 나이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을 했다.

신실한 부모의 신앙을 물려받은 유관순 열사. 그의 묘비에 새겨긴 기도문을 보면 그가 얼마나 확고한 믿음의 사람인지 알 수 있다.매봉산 자락에 있는 묘비에는 유관순의 나라사랑에 대한 기도문이 적혀 있다. “하나님이시여 이제 시간이 임박하였습니다. 원수 왜를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철저한 기독교 신앙교육 아래 다져진 그의 믿음의 진정성을 알 수 있는 기도다.

진정한 용기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다니엘과 같은 담대한 용기,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의 용기가 부럽지 않은 순간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정동길에 발랄한 여고생들이 삼삼오오 지나간다. 재잘대는 소리가 싱그럽다. 가슴에 꿈을 품은 여고생들의 발걸음이 명랑하다. 해맑은 여고생들은 당시 같은 길을 걸었을 이화학당의 유관순 열사 후배들이다. 이들은 96년전 3.1운동 당시 또래였던 유관순 열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한민국의 잔다르크 유관순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땅에는 교회가 있다. 교회마다 말씀으로 훈련받고 자라나는 젊은 다음 세대가 우리에게 희망이리라. 하나님 사랑이 곧 나라사랑이며 불의에 항거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믿음의 선배들이 가진 유전자가 후손들에게 있지 아니한가.

나라를 위하여 흘린 순교의 피가 스며든 이땅은 거룩한 성지가 되어 열방 가운데 우뚝서리라 믿는다.

그의 유언장을 보며 차마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말인지, 가슴이 져며든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유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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