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허물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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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허물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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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9.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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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그리스도의 희생
▲ 이경직 교수

 이전에 아홉 가지 재앙이 이집트에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빛과 흑암을 나누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백성과 구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출 10:23). 열 번째 재앙이 오기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을 이집트 백성과 구별하기를 원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새해 제14일 해 질 때에 잡은 양의 피를 그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야 했다(출 12:7). 하나님께서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출 12:13)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는 약속을 주셨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의 집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적셔지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신 6:6)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9)고 말씀하셨다. 유대인에게 쉐마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이다. 유대인들은 쉐마를 양피지에 기록하여 메주자(Mezuza) 통에 넣어 문설주에 붙였다. 그들의 집이 하나님 말씀에 의해 세상과 구별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 집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세상과 구별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다(엡 6:17). 두루 도는 불 칼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듯이, 성령의 칼인 하나님 말씀은 우리를 심판과 재앙으로부터 지켜준다.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을 것이다(계 14:1). 이스라엘 백성이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다(벧전 1:18-19).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백성이 신으로 숭배하는 어린 양을 죽여 그 피를 집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다. 이를 통해 그들은 그들이 이집트의 신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음을 선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이집트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었다. 우리도 육적인 자아가 죽고 영적인 자아가 새롭게 태어나는 세례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피로 적셔진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415장)라는 찬양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죽여야 하는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이어야 한다(출 12:5). 이집트에 내려질 열 번째 재앙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그들에게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 했다. 그것을 드림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첫 아들과 가축들의 첫 소생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그 양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양이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외아들 이삭을 태워 제물로 바쳐야 했지만(창 22:9-10)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셨다(창 22:8, 13). 이스라엘 백성의 첫 아들이 죽는 대신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롬 5:8). 이집트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도 이집트 백성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도 아직 연약했고 경건하지 않았고 죄인이었다(롬 5:6,8).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첫 아들들을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마셔야 하는 고난의 잔은 너무나 쓴 것이었기에 예수님은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눅 22:42)고 기도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음의 잔이 이스라엘 백성을 지나가게 하시는 대신 독생자 예수에게는 지나가지 않도록 하셨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다. 예수님도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고 기도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출입하는 문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발랐다. 그 피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이다(히 9:7).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허물을 가렸다(잠 10:12).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 양의 피를 문지방에는 뿌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 집을 출입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귀한 피를 밟지 않을 수 있었다.

이집트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의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진 어린 양의 피를 보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라는 모세의 요구 앞에 이스라엘 백성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출 5:9) 보복했던 파라오는 어린 양의 죽음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이집트 백성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으면 열 번째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난 후에도 그들의 집 문설주와 인방에는 어린 양의 피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볼 때마다 이집트 백성은 그들의 첫 아들을 구할 수 있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후회할 것이다. 첫 아들의 생명을 보존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을 거부한 것은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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