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실 칼럼]미운 것을 넘어서 싫어지는 사람은 어떡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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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칼럼]미운 것을 넘어서 싫어지는 사람은 어떡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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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6.0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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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청소년을 믿음으로 키우는 빵과 기도. <12>

지난 주에 참으로 우연하게 똑같은 이야기를 다른 두 사람에게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미운 것을 지나서 싫어지는 사람’에 대한 슬프고도 안타까운 이야기였지요. 한 사람은 작가 동료인 A이지요. A는 평생 고생, 특히 물질적 어려움 없이 산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주부였지요. 그런데 남편이 아내 몰래 사업을 한다면서 전 재산을 다 빼내어 투자를 하다가 완전히 파산한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 벌어진 일은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다 알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혼하고 친정에서 살게 된 A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젠 미운 게 아니라 싫어졌어. 그 사람 목소로만 들어도 토할 것 같아!’ 미운 것을 넘어서는 감정이 ‘싫어지는 것’임을 새삼 깨달은 날이었지요.

그런데 우연히도 다음 날, 한 중학생에게서 상담 이메일이 왔습니다. 경기도에 사는 중2 여학생인데, 사실 A와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이지요.

‘선생님, 우리 반 친구 중 H가 있어요. 우리는 서로 언약식도 했어요. 서로 은반지도 나눠 끼었어요. 그런데 H가 남친이 생기더니 저를 자꾸 멀리하고, 내가 준 반지도 안 끼고, 그 남친이 준 반지만 끼고 다닙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나는 평소에 H한테 나의 모든 얘기를 하고 비밀도 다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H가 자기 남친한테 다 얘기한 것입니다. 또, 그 남친이라는 애는 다른 아이들한테 얘기하고요. 그 바람에 나는 우리 반에서 완전히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H가 싫었는데 이젠 너무 밉고 미워서,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입니다.... ... 선생님, 사람이 이렇게 싫은 건 처음입니다. 어떡하죠?’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싫은 것을 지나 미워지고, 또 미운 것을 넘어 죽이고 싶은 감정으로 발전(?) 아니, 괴물처럼 변질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위의 두 가지 예는 요즘 현실 속에서 아주 특이하거나 이상한 것도 아닌 듯 합니다. 자기 마음에 조그마한 미움이 자라게 되면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쑥쑥 자라나서 어느 순간에 무서운 일로 벌어지는 뉴스를 거의 날마다 보고 듣는 지경이 되었으니까요.

성경 속에서도 이러한 예는 얼마나 많은지요! 최초로 미움으로 인한 죄를 짓는 사람은 어린 아이들도 아는 ‘카인’입니다. 카인도 처음에는 아벨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정도의 감정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조짐이 생길 때에 재빨리 그것을 치료하고 마음의 쓴뿌리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면 카인이 동생을 죽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고 놀랍기도 한 것은 인간은 마음 속 쓴뿌리에 대해 의외로 둔감하거나 자신을 완전히 제압할 정도로 거대한 나무로 자라는데도 무방비 상태로 있다는 것이지요. 카인도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에 안 들었다가 그것이 자라서 미워지고, 급기야는 싫어지더니, 마침내 아예 자기 눈앞에서 없애는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요즈음 갖가지 이유의 혐오범죄, 묻지 마 범행을 지르는 사람들의 어린시절과 청소년 시절 등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현대판 카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생긴 상처로 사람과 세상이 미워지고 싫어진 채 살다가 어느 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과 영혼이 ‘사망선고’받은 자들처럼 무너져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청소년들의 마음을 대청소하듯 탈탈 털고 온갖 어그러지고 휘어지고 구부러지며 변색된 마음의 쓰레기들을- 미움의 파편, 싫음의 찌꺼기, 증오와 분노의 곰팡이, 오해와 용서하지 않음의 먼지뭉치 등등- 청소해야 합니다. 날마다 날마다 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얼굴에 더덕더덕 분칠은 하면서도 마음의 청소는 신경도 안 씁니다. 어른들도 무관심합니다. 그 어린 마음 안에 더러운 곰팡이가 조금씩 조금씩 퍼져가고 있는데도...!

빵>>> 오늘 하루만 내 마음 아픈 것, 섭섭한 것은 잠시 잊어버립시다. 그리고 생각해보아요. 6살이든 8살이든 기억이 나는 그 어린 시절부터 꼼꼼히 생각해 봅시다. ‘혹시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거나 심지어는 욕하고 때리고 싶을만큼 증오하는 사람이 있는가? 누구일까?’ 사람들은 거의, 아니 모두 자기 마음 아픈 것에 집중합니다. 천사도, 완벽한 존재도 아닌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지금 이 지경까지 어지러워지지는 않을 겁니다.

기도>>>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요한 1서 3:12)- ”Do not be like Cain.“ 정확히 말하면 가인처럼 ”하지 말라“가 아닌 ”되지 말라!“ 입니다. 우리 존재 자체를 재인식, 재정비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이 앞 절에 나오는 11절 말씀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입니다. 주님은 ‘사랑하라!’ ‘should love’라며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싫어하고 미워하고 괴롭히고 죽이는 것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듣고 보고, 배운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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