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통일 한국의 주인공” 한국 사회 섬기는 탈북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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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통일 한국의 주인공” 한국 사회 섬기는 탈북 청년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7.07.19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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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노숙인 돕는 탈북민 ‘유니시드 통일봉사단’

한국교회 소통의 현장을 찾아서 ⑳

취약계층으로 여겨진 탈북민, 수혜자가 아닌 시혜자로
남북청년 교류, 제3국 탈북민 지원 사역도 함께 진행
“통일은 탈북민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

“나눔은 가진 것이 많아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보다 도움을 더 필요로 하는 곳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죠. 탈북민도 수혜자가 아닌 시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저녁. 밤색 앞치마를 둘러맨 청년들이 서울역으로 나선다. 2번 출구 앞 거리에서 푸른 상자들을 내려놓자 하나둘 노숙인들이 모여든다. 200여 명의 노숙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는 청년들의 손길이 능숙하다. 이들 뒤로 내걸린 현수막에 적힌 이름은 ‘유니시드(UNI Seed) 통일봉사단.’ 노숙인 급식과 통일이라니? 언뜻 어울리지 않는 주제처럼 느껴졌다.

유니시드 통일봉사단은 탈북민 청년들이 주축으로 구성된 봉사단체다. 탈북민인 엄에스더 대표와 3명의 탈북민 친구들이 뜻을 모아 만들었다. 2014년 7월 네 명의 친구가 소소하게 시작한 봉사활동은 한 달이 지나자 열 명이 넘었고 세 달째에는 서른 명이 넘는 청년들이 모여 들었다.

지난 7월 3주년을 맞이한 유니시드의 봉사단원은 이제 50명이 넘는다. 봉사단의 활동이 알려지자 취지에 공감한 남한 청년들도 동참하고 싶다며 엄 대표를 찾아왔다. 탈북민 청년들과 남한 청년들이 어우러져 봉사하는 유니시드는 통일 한국의 미래를 보는 듯했다.

봉사단은 점심시간을 갓 넘긴 오후 한시 만리현감리교회에 집합한다. 단원들이 자발적으로 봉사에 참가해 참가인원은 매번 다르다. 적게는 열댓 명에서 많을 때는 서른 명이 넘는 청년들이 도시락 나눔에 함께한다.

교회에 모인 청년들은 200개의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유니시드는 봉사 당일 직접 반찬을 만들어 노숙인들에게 나눈다.

원래 포장이 끝난 도시락을 옮기는 건 청년들의 건강한 두 다리의 몫이었다. 주방도 없어 다른 단체의 주방을 빌려 써야 했다. 지금은 다행히 만리현감리교회에서 주방과 차량을 제공하고 있다.

나눔을 시작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고향음식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 북한식 두부밥을 준비했지만 노숙인들은 낯설어 했다. 물을 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노숙인들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밥과 된장국, 불고기와 김치를 기본으로 북한식 반찬을 하나씩 곁들인다.

남기는 밥보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빨갱이가 주는 밥은 먹지 않는다”던 몇몇 노숙인들의 태도였다. 그랬던 사람들도 진심어린 봉사가 계속되자 미안해하며 도시락 나눔 현장을 찾는다. 반대로 탈북민이 봉사활동을 한다며 대견해 하고 더 고마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엄에스더 대표는 탈북민이 하는 봉사임이 알려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봉사하는 탈북민 스스로가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남한에서 존재감이 없는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방황하는 탈북민들도 적지 않아요. 이들이 봉사를 하면서 자신이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통일 대한민국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고민하며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도울 수 있을 때 돕자”
엄에스더 대표가 봉사의 마음을 품게 된 건 탈북 이후 중국에 몸을 숨기고 있을 때였다. 당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를 보며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그때 골목에서 팔다리가 없음에도 입으로 정성스레 붓글씨를 쓰는 노인을 발견하고 삶의 자세가 달라졌다. 돕고 싶다는 마음에 복지관을 찾았지만 복지관에서는 신분증을 요구했다.

“당시 저는 북한인도 중국인도 아닌 무국적자였어요. 돕고 싶었지만 도울 수조차 없는 신분이었죠. 봉사활동도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군요. 그때부터 제 인생의 좌우명이 ‘할 수 있을 때 하자’로 바뀌었어요.”

2008년 한국에 입국한 엄 대표는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나눔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감사했다고 전했다. 취약계층인 장애인, 독거노인 봉사로 시작해 노숙인 사역으로 발을 넓혔다. 가진 것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봉사할 수 있을 때 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유니시드에 대형교회나 기업의 후원이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도 재정부족으로 도시락 나눔을 거른 적은 없다. 엄 대표는 봉사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경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원 마련 방법이 없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채워주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매달 다른 방법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죠. 곁에서는 이제 ‘땅에 발을 붙이고 살라’며 핀잔을 주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 나눔의 삶이 너무 행복합니다.” 행복하고 싶고, 또 행복하기 때문에 나눔을 계속한다는 엄 대표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쳤다.

하나님 나라의 씨앗, 유니시드
유니시드는 이름 그대로 통일의 씨앗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통일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통일 한국을 바라보고 있지만 엄에스더 대표에게는 그보다 더 큰 꿈이 있다. 통일을 위한 씨앗을 넘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씨앗이 되는 것이다.

“보통 통일이라고 하면 남북통일만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열방이 하나님 나라로 하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어요. 유니시드라는 이름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씨앗이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 됨을 꿈꾸는 유니시드는 노숙인 도시락 나눔과 함께 다양한 사역을 진행한다. 특히 탈북 청년들과 남한 청년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한 친구가 되는 일에 힘쓰고 있었다.

요즘은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다. 헤어진 가족도 없고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왔기에 분단이 와 닿지 않는 젊은 세대는 통일을 말하면 비용을 먼저 걱정한다. 엄 대표는 유니시드에서 남한 청년들은 북한과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탈북 청년들은 앞으로 살아갈 남한사회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했으면 한다는 소망을 전했다.

짝수 달에는 남북청년들의 소통과 교류를 목적으로 한 ‘유니데이’가 진행된다. 유니시드 아래 하나 된 남북청년들은 문화공연과 소풍, 통일수다를 함께 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홀수 달에는 문화교류 프로그램 ‘너랑 나랑 공방’이 마련돼 있다. 지난 5월에는 수제청을 함께 만들었고 이전에는 캘리그라피를 함께 배우거나 디퓨저를 만들기도 했다. 공방은 새로운 것을 배우기 좋아하는 청년들의 반응이 뜨겁다.

다른 탈북민을 돕기 위한 사역도 진행한다.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에는 탈북민 2세 보육원에 학용품을 나누고 제3국에 숨어지내는 탈북민들에게 의류와 생필품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엄 대표 자신이 한국 입국 전 중국에서 도피생활을 했기에 제3국 탈북민들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다.

탈북민 대학원생을 위한 장학금 지원도 계획하고 있다.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올해 2학기부터 2명의 탈북민 대학원생에게 1년 동안 장학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유니시드는 이들이 성장해 통일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가기를 꿈꾸고 있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탈북민을 단순히 취약계층이나 수혜자로 여기는 시선이 존재한다. 엄에스더 대표는 탈북민을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이자 함께 통일에 대해 고민할 주체로 봐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통일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탈북민을 다른 집단의 사람들이 아닌 친구이자 이웃으로 봐주셨으면 해요. 탈북민들이 통일 대한민국의 주인공으로서 주도적으로 설 수 있도록 응원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성장하는 탈북민 단체를 만들고 싶은 엄 대표는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름은 유니시드 컴퍼니라고 붙였다. 영리 기업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비영리단체 유니시드 통일봉사단을 지원하고 사회를 섬긴다는 계획이다.

그는 사회적 기업의 첫 발걸음으로 푸드트럭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3일, 한 명의 직원과 함께 트럭을 끌고 경마장에 나선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지만 훗날 통일의 씨앗을 넘어 창대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엄 대표와 유니시드는 지금도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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