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춤추는 자이다.” (Zarathustra is a dancer.)
상태바
“차라투스트라는 춤추는 자이다.” (Zarathustra is a dancer.)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7.08.23 1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석준의 시사영어 - 37

건축가 ‘망사르’의 설계로 10여년에 걸쳐 완성된 거대한 회랑이 ‘베르사이유 궁전’ 내에 있는 ‘거울의 방’이다. 70미터에 이르는 긴 복도천정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는 벽면의 유리와 더불어 화려함의 극치를 나타낸다.

주로 대 연회와 무도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문득 유럽전역의 전쟁 속에서 제국주의 팽창을 위해 침략을 망설이지 않던 시절에, 아이러니하게도 귀족들은 전쟁의 승리 혹은 그 기원을 위해 이곳에 모여 춤을 췄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Thus Spoke Zarathustra is a philosophical novel by German philosopher Friedrich Nietzsche)’에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춤추는 자이다”라고 했다.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할 만한 무거운 짐을 벗어내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의 삶, 그 삶에 투정부리지 말고 오히려 견디며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몸을 써서 예술을 하라” 곧 머리를 비우고 춤을 추듯 살라고 그는 주장했다.  

“난 춤을 출줄 몰라”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로 춤을 추려한다. 춤은 머리로 추는 것이 아니다. 몸에 익어야 하고, 익은 그 몸이 자연스럽게 먼저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몸으로 춤을 추려면 머리가 비워져야한다. 매일 매일 사람을 무겁게 만드는 것에서, 가치와 관습과 규범들 속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발버둥 쳐야 산다는 생존의 굴레를 벗어버려야 하는데, 이렇게 생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좋은 수단 중의 하나로 춤이 선택됐다. 

그러나 고대 희랍시대의 건전한 무용이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타락한 육체적 춤으로 전락했다. 중세 기독교 문화에서는 ‘악마의 소업‘으로까지 규정됐다. 그러면서 르네상스를 거치고, 육체적 제압의 해방과 인간의 자연 모습을 되찾는 다는 명분 아래 무용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생 기원된 룸바(Rumba), 차차차(Cha Cha Cha), 미국에서 발생한 스윙댄스에 기원을 둔 자이브(jive) 등은 오늘날 ‘스포츠 댄스’가 되어 이미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있다. 

“인생은 원래 고달프다.” 술 마시고, 춤을 추고, 밤새도록 노래를 부른다 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그 ‘고달픔’이다. 그리고 너무 생각 없는 쉬운 삶은 사람을 망친다. 사람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한다.

성령의 강한 인도하심이 없이는 인간은 바로 정신 줄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루이14세는 이 거대한 ‘거울의 방’에서 정신없이 춤을 추다가 ‘프랑스혁명’을 맞았다. 머리를 비우고 몸을 자유롭게 한다는 명분만을 붙든 결과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