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실 칼럼] 나를 먹잇감으로 내놓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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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칼럼] 나를 먹잇감으로 내놓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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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1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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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 28

*요한복음6:54-58>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 성찬, 니콜라 푸생, 1647년, 캔버스에 유화.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11월 첫 주 예배를 감사절기로 섬겼다. 그래서일까. 그 날 저녁 혼자 식사를 하기 전 기도를 하는데 여느 때와는 다른 기도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기도제목이었다. 내 입안에 들어가 나를 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생선 한 토막, 양파, 무, 파, 계란, 배추, 멸치, 토마토 등등… 모든 먹거리들이 대단하게 생각된 것이다. 이 모든 동식물이 일 년 내내 얼마나 제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았을까. 그래서 벌레 먹었지만 이겨내고 살아남은 토마토, 어두운 땅 속에서 싱싱하게 생명을 유지한 양파와 무와 파, 비바람과 뜨거운 햇살에 굴복하지 않고 튼튼하게 자라난 배추, 자기보다 상위계층의 바다동물에게 잡혀먹지 않고 용감하게 자리를 지켜온 물고기들…

그래서 존재하게 된 그 동식물들은 오늘,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의 식탁 위에 올라 생명을 공급해주는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모든 것을 살게 해주고, 열매 맺고, 마침내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으로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곧 이어 나의 기도는 참담한 심정으로 변했다. 한낱 이런 과일이나 채소, 물고기들도 자신의 보존과 생명의 이어짐을 위해 치열하게 올 1년을 버텨왔는데, 우리는 그에 비하면 얼마나 치열하고 용감하게 일상을 이루어 왔는가. 하루도 쉬지 않는 사람을 포기했다는 소식,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한숨, 쓰러진 자리에서 아예 일어날 의지조차 갖지 않는 사람들의 눈물. 심지어는 나보다 잘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나도 망가뜨리고 남도 파괴하는 일들까지도 거의 날마다 일어나고 있잖은가.

추석과 추수감사절까지 한국처럼 감사절기를 연거푸 지키는 교회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성도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다.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 시기와 질투, 고소와 고발이 감사를 삼켜버리고 있다.

생각해 보라. 동식물들은 인간에게 ‘먹이’가 되려고, 전력을 다해 뜨거운 햇살과 비바람과 벌레들과 온갖 공격자들을 이기며 왔다. 그래서 우리에게 ‘먹이’를 넘어선 육체의 ‘생명’이 되고, 마음의 ‘기쁨’이 되어주고 있다. 그런데 감사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서로에게 사랑과 헌신의 먹잇감이 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다 주셨다. 우리에게 먹잇감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우리는 생명을 넘어선 영생을 얻고, 마음의 기쁨을 뛰어넘는 영혼의 ‘희락’을 마음껏, 영원히 누리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결코 나를 화평과 사랑의 먹잇감으로, 조정과 화합의 제물로, 용서와 용납의 맛있는 재료로 내주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온 몸을 찢기어 우리에게 살과 피를 주신 기억한다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양파 한 알, 멸치 한 마리조차 최선의 생의 의지를 보여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결코 내 배만을 채우기 위해 남의 먹잇감을 탐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를 먹잇감으로 내놓아 시끄러운 곳에서 평안을 이룰 것이다. 사실 각 성도의 삶 속이나, 교회의 안방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실망과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죽으려는 사람, 나 자신을 공동체의 먹잇감으로 내려놓는 사람이 거의 없음에!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 대신 날마다 자신의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시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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