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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 목공철학으로 무장한 ‘목수 목사’

기사승인 [1432호] 2018.04.03  10:5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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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쓰는 개척행전(7) 시흥중앙교회 ‘예木수공방’ 권혁진 목사

치열하고 바른 삶 추구하는 일하는 목사
주민들 보듬고 함께하는 ‘마을 학교’ 계획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종착지이자 출발지, 거기 예木수공방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휴대폰 지도를 이용해 찾아간 곳, 예木수공방은 없었다. 건물 2층의 열방교회의 문을 두드리자 그곳에 간판도 없는 예木수공방이 있었다. 사실 공방도 작은 탁자 하나와 책장이 놓인 뒤편 공간에 숨어있었다.

교회 겸 목공방에서 만난 권혁진 목사(시흥중앙교회)는 안 해 본 게 없는, 그래서 못하는 게 없는 목사였다. 요즘 유행하는 알쓸신잡(알아 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으로 설명되는 사람이었다. 목공은 둘째 치고라도 택시 운전을 했고, 컴퓨터 수리를 했다. 천연염색도 했고, 거기다 생활한복도 만들었다. 유기농 농사를 지었고, 최근에는 도배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깊이 있게 전문적으로 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냥 말뿐이었다. 모두 출중한 실력이었고, 이른바 숨은 고수였다. 다만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고, 숨으려고만 했다.

▲ 목수 목사로 불리는 권혁진 목사는 예木수공방을 통해 일하는 목회자로서의 생활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목회자의 자세를 보여주려고 한다.

# 교회 용품에서 일반 제품까지

예木수공방이 있는 열방교회는 아내인 김별선 목사가 개척해 시무하는 교회였다. 남편은 시흥에서, 아내는 서울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 부부. 이 교회 한 켠에 커튼을 쳐 목공을 위한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작업에 필요한 테이블쏘, 원형쏘 등 전문 기기들이 배치돼 있었고, 손작업을 위한 다양한 도구들이 목공실을 채웠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건축이나 유사한 전공을 한 것도 아니었다. 권 목사는 물리학도였다.

이런 권 목사는 서른 살 나이에 귀농했다. 거기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했다. 그리고 손을 놀려 만드는 것을 워낙 좋아했다. “집 짓는 것, 고치는 것, 천연재료로 염색하는 것, 옷을 만드는 것도 배웠죠. 3년 정도 배웠는데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생활한복 사업을 함께 하자는 제안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과 함께 이런 것들이 멀어졌는데, 결혼 당시 아내의 조건은 ‘귀농을 포기하고 목회를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생활한복 만드는 일은 얼마 전까지도 했었죠.”

일을 하다 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권 목사가 만든 것을 보고 주위에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했다. “자그마한 헌금함을 만들었는데 그걸 보고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이후에 이 헌금함만 100개 정도 만든 것 같아요. 이제 이 헌금함은 눈을 감고도 만들 정도가 됐는데, 이게 소문이 나면서 월세를 부담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젠 ‘목수 목사’로 불린다. 그리고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삼단 목공철학’이 있다. 단단하게, 단순하게, 단아하게. 이 세 단어로 그의 성격과 제품은 설명된다. 단순하면서도 단단하고 단아한 제품, 이것이 권 목사가 만들어내는 제품들이다.

강단으로 사용되는 테이블 제단, 말씀상, 기도 의자, 헌금함, 십자가. 삼단 목공철학으로 지금까지 제작했던 교회 용품들이다. 이 제품들은 다양한 형태와 크기, 재질로 수십, 수백여 개가 제작됐다. 그렇다고 교회와 관련된 제품만 만드는 건 아니다. 일명 은퇴자의 의자로 불리는 아이론덱체어, 격자 선반, 기념주화 박스, 더치커피 기구, 사이드 테이블, 야외 테이블, 수납장, 원목 책상, 육각형 선반 등 주문하는 모든 것은 제작된다. 그리고 웬만한 커피숍 인테리어와 가정집 리모델링도 가능하다.

▲ 권혁진 목사가 제작해 타 교회에 배송한 테이블 제단과 말씀상, 기도 의자. <사진 제공= 예목수공방>

# ‘지역 학교-마을 학교’ 준비

권 목사에게 예木수공방은 철저한 사역의 도구. 모든 것을 사역으로, 선교로 인도해 가는 안내자로 활용할 뿐 이른바 교회 부흥을 위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철저하게 ‘일하는 목사’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인식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 일들을 통해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꾸려고 한다.

자비량 목회를 택한 것은 이 때문이다. 개척 교회라는 구조적 문제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발적 선택이었다. “이제 목회자들이 교인들의 헌금으로 교회를 운영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회가 수익을 창출해서 양육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목회자도 일을 해야 하고, 모든 상황이 사역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목회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동남아 오지에서의 자비량 선교도 계획하고 있는 일 중에 하나. “아내는 교육, 저는 양육을 맡을 계획입니다. 그리고 생활에서도 자립할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현지에서 자족할 수 있게, 현지의 자원과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선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당고개에 있는 예木수공방을 경기도 시흥중앙교회로 옮겨갈 생각이다. 거기서 체계적으로 다시 시작하면서 지역 학교, 마을 학교를 열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 교회로 만들 계획이다. “셀프 카페 형태로 만들려고 해요. 사람들을 만나고, 목공도 하고…. 동네 사랑방 형태죠. 그리고 이 시스템은 나중에 해외 선교지로 그대로 옮겨갈 겁니다.”

권 목사의 예木수공방은 그 흔한 인터넷 사이트 하나 운영하지 않는다. 아까운 솜씨, 단순하지만 단단하고 단아한 작품들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다 못한 아내 김별선 목사가 ‘예木수공방’이라는 이름의 페이스북(www.facebook.com/yemoksu)을 대신 운영한다. 이게 입소문이 나면서 조금씩 퍼져나갔다.

“하나님은 저에게 돈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것을 좋아하고, 이것이 제게 주신 달란트입니다. 저는 이것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나눕니다.”

▲ 아카시아 원목 헌금함(왼쪽)과 고무나무로 만든 격자 선반. 단순하지만, 단단하고 단아하다. <사진 제공= 예목수공방>

#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과 목회

지금 하는 작업은 뭐냐는 질문에, 대전에 있는 한 교회에서 주문한 헌금함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제품들의 가격대를 물으니 100% 수작업 제품을 공산품 가격선에 판매했다. 고가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사고 싶은 게 소비자들이지만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나? 세상 물정을 모르나?’ 하는 의구심을 넘어, 심지어 거제도에서 주문한 평상은 직접 배달까지 해주었단다.

이런 일들 때문에 아내에게 구박도 많이 받지만, 아내도 못 이기는 척 져준단다. 목회자이기 때문이고, 생활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게 사역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사들이 말만 잘하고, 입으로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 권 목사의 마음이고 생활이다.

“이 예木수공방을 통해 목사도 부지런히 일하고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주변의 몇 명, 몇 가정이라도 이것을 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최선의 일을 할 뿐입니다.”

공종은 기자 jekong@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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