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받은 성도의 가장 큰 헌신은 ‘용서와 화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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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받은 성도의 가장 큰 헌신은 ‘용서와 화목’
  • 장종현 목사
  • 승인 2018.07.1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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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현 목사의 개혁주의생명신학 선언문 해설-22) 모든 ‘은혜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거저 받은 사람은 거저 줄 수밖에 없고, 거저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보좌를 두고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찾아와 주신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은, 자신도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내어 드려야만 합니다. 그 은혜 앞에서 이기적인 주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신 그 아들을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내어 주셨으니, 우리도 하나님과 교회 앞에 주께서 원하시는 것을 조건 없이 드려야 합니다(롬 6:13; 12:1). 이것이 은혜의 복음을 받고 누리는 자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내어 주신 큰 사랑과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그 아들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와 상관없이 자기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은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헌신은, 용서와 화목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은 자는 이웃을 그와 같이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심판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심판주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앉을 수는 없습니다(약 4:12).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우리에게 범죄한 자들을 용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그 놀라운 용서의 은혜를 체험하고 누립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길’(마 6:12) 간구하는 주기도문의 의미입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용서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한 용서는 기도의 무릎을 꿇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한다는 것은 우리의 부패한 자아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타인을 심판할 권리가 없으면서도 스스로 심판주의 자리에 올라갑니다. 그래서 용서하려면 주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약 4:10). 모든 심판을 주께 맡겨야 합니다(롬 12:19; 벧전 2:23). 우리가 받은 은혜와 용서를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에게도 흘려보내야 합니다. 이러한 순종은 무릎 꿇는 기도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용서할 마음과 능력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화해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요 의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로부터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고후 5:18). 오늘날처럼 교회가 분열된 때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연합이 제자 됨의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요 13:35; 17:23). 오직 참된 사랑만이 연합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우리가 그 참된 사랑 안에 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온갖 이기심과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부패한 인간 본성으로서는 참된 연합을 이룰 수 없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화목제물로 내어 주신 희생을 통해 죄인 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습니다(롬 3:25). 이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이기심과 헛된 욕망을 버리고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면, 형제와 화목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우리는 기도의 무릎을 꿇고 성령의 도우심 앞에 온전히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연합과 화목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신 확실한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은혜로 구원의 선물을 허락하신 것은 그 은혜를 남용하거나 악용하게 하심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오직 은혜로 주신 구원에 합당한 열매로 드러나고 증명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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