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우면 은혜가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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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우면 은혜가 안 된다고?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8.11.19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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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봅시다-세련됨의 함정에 빠진 신앙

예배를 받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

취재현장을 다니다 보면 무심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교회가 우리 교회라면 다닐 수 있을까?” 예배에 참석하고 설교를 들으면서 은연중에 다니고 싶은 교회, 다니기 힘든 교회를 평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보통 기준은 ‘세련됨’에 있다. 예배가 진행되는 순서나 표현되는 방식, 찬양팀의 실력 혹은 설교를 풀어가는 목회자의 스타일이 세련되지 않으면 속으로 “아 이 교회는 나랑 맞지 않아”하고 단정 짓곤 한다.

이런 생각이 워낙 자연스럽게 들어서 뭔가 잘못됐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는데 최근 이 생각을 고쳐먹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신학생들이 출전하는 설교대회가 열렸는데, 참가자들의 설교가 모두 끝나고 심사위원장이 나서 총평을 전했다. “말을 매끄럽고 세련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그거 인본주의입니다.”

생각해보니 설교자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설교의 본질이 유려한 말솜씨에 있지 않듯이 교회의 본질도 외형적 세련됨에 있지 않다. 어쩌면 그동안 나의 신앙생활은 세련됨이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예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닌데, 교회 생활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데 하는 반성을 해본다.

예배에서 세련됨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 최상의 예배를 올려드리는 차원에서가 첫 번째요, 신앙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가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사역의 특성에 따라 후자의 경우를 비교적 강조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만 결코 첫 번째 이유를 넘어서서는 안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세련됨을 구현하는 것이 여간 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백조가 물 밑에서는 치열한 물장구를 치고 있듯, 매끄러운 예배와 세련된 표현들에는 그만큼의 헌신이 필요하다. 전에 다니던 서울의 한 대형교회에는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초단위의 예배 큐시트까지 만들었다. 하나의 세련된 예배가 드려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는지 안 본 사람은 모른다. 정작 내가 그 헌신의 자리에 있지도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세련됨을 요구만 하는 것은 어쩌면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다.

교회마다 주일학교를 비롯한 봉사자를 모집하는 시기가 왔다. 어려운 자리일수록 지원자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다고 한다. 그간 교회에 제시했던 ‘세련됨’이라는 숙제를 나 스스로 고민해보고 함께 풀어볼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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