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기부, 누군가에게는 ‘새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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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기부, 누군가에게는 ‘새 삶’입니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8.12.24 2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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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 기부로 ‘희망’까지 선물 받은 사람들

위축되는 기부문화…'연말 쏠림' 현상도 둔화
어려운 이웃 돕는 ‘기부’…복음전파의 또 다른 길

올해도 ‘기부 한파’가 매섭다. 불경기에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이 더해지면서 갈수록 온정의 손길이 줄어드는 탓이다. 작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개인모금액은 1,939억 원이었다. 2013년 2,663억 원에서 27% 하락한 수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사회조사’에서도 1년간 기부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사람은 26.7%로 2015년 29.9%와 비교해 뚜렷한 감소세를 보였다. 그나마 연말 의례행사처럼 반짝하던 ‘기부금 쏠림’ 현상마저도 이젠 시들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계속 외면할 수는 없다. 아니,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복음전파를 행하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여기, 우리들의 십시일반 작은 나눔 덕에 ‘진짜’로 기적처럼 새 삶을 얻고 하나님을 만난 이들이 있다. 가난이 숙명이었던 아프리카 청년부터 자립에 성공한 노숙자·장애인이 그 주인공이다. 한 영혼을 살리는 기부에 더 많은 성도들이 동참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들의 감사고백을 들어봤다.

그때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누군가로 인해 변한 경험, 여러분은 있으신가요?” 지난달 키가 훤칠한 케냐 출신 청년 라파엘(Raphael·30세)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때 쓰레기장에서 음식을 찾아 먹던 아이라고는 상상도 안 될 만큼 늠름한 모습이었다. 8세 때부터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을 통해 후원을 받아온 그는 밝은 얼굴로,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간증을 나눴다.

“제가 태어난 슬럼마을 ‘단도라’는 나이로비에서도 가장 큰 쓰레기장이 있는 곳입니다. 매일 엄청난 악취와 유해가스 때문에 호흡기질환이 생길 정도죠.” 라파엘은 실직한 아버지와 2명의 엄마, 그리고 14명의 형제 속에서 자랐다. 집에는 전기가 들어올 리 만무했고 공동수도와 화장실을 8가구가 같이 사용했다. 하지만 이 누추한 보금자리마저도 집세를 내지 못해 잃었다. 그럼에도 라파엘은 머물 곳 없는 현실보다 ‘죽음’이 더 겁났다고 했다. 궁핍과 질병을 이기지 못하고 5살도 채 되기 전 하늘로 떠난 형제가 무려 4명이나 됐기 때문이다.

라파엘이 희망을 품기 시작한 건 일대일 결연을 맺은 미국인 후원자 덕분이었다. 꿈에 그리던 학교도 가고, 병원에서 치료도 했다. 후원자는 물질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든든한 힘이 돼줬다. “라파엘 사랑해. 널 위해 기도하고 있어”라고 적힌 편지에 그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11살 때 예수님을 만났다.

“더 놀라운 건 제 후원자도 큰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아들을 둔 힘든 상황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후원자는 삶을 바라보는 제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라파엘은 현재 컴패션 케냐국가 사무소에서 후원자들을 안내하는 비전트립 전문가로 근무하며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그때 아무도 저를 사랑해주지 않았다면, 마약중독자와 폭력배가 판치는 단도라 지역에서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제 삶을 바꾸기 위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그분의 자녀를 사용하셨어요. 그리고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난에서 벗어났죠. 앞으로 저 또한 젊은 친구들이 소망을 품고 살도록 격려하고 싶습니다.” 

▲ 케냐청년 라파엘이 지난달 한국을 방문했다.

자선이 아닌 기회를!
“얼마 전에도 고객에게 기분 좋은 기증 전화를 받았어요.”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굿윌스토어’에서 기부문의와 신청접수를 담당하고 있는 정해미(38세) 선임이 말했다. 7년차 다운 능숙한 업무능력만 봐서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는 정신장애 3급, 조현병을 앓고 있다. 그가 일하는 굿윌스토어는 기업·개인으로부터 의류·소형가구·책 등 사용하지는 않지만 버리기 아까운 물건을 기증받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곳이다. 수익금은 장애인 근로자의 월급이 된다.

그의 하루일과는 알차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쉴 새 없이 기증자들의 전화를 받고 정보를 전산에 입력하다보면 금방 오후 5시가 된다. 가끔 야단도 맞지만 그래도 회사일은 즐겁다. 퇴근 후에는 뜨개질 등 취미활동은 물론 친구들이랑 저녁도 먹으며 수다 꽃을 피운다. 운동·공부 등 자기계발도 열심이다. 현재 사이버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 중이며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도 땄다. 내년부터는 꽃꽂이도 배우고 임상심리사 2급 시험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그러나 그가 이토록 활기찬 일상을 보내기까지는 적잖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해미 씨는 몸이 아파 오랜 공백기를 가졌던 과거를 이렇게 회상했다. “한동안 집에만 있으면서 극도의 우울증을 느꼈어요. 제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감이 바닥이었죠. 반대로 일자리를 찾으려 무던히 애를 쓰던 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안 그래도 취업난에 장애인을 쉽게 받아주는 기업은 별로 없었고 그때마다 좌절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입사하게 된 굿윌스토어는 해미 씨에게 삶의 전환점이 됐다. “일반직장은 경쟁사회다보니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서로의 아픔을 공감해줄 믿음의 동료들 덕분에 힘이 나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갈 곳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해미 씨는 끝으로 기부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기부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고요. 대수롭지 않게 여긴 기증품 하나가 장애인들에게는 큰 일자리가 됐잖아요. 월급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최고는 못 돼도, 최선을 다하면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입니다. ‘자선’이 아닌 ‘기회’를 준다는 생각으로 더 많은 이들이 기부를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굿윌스토어에서 일하고 있는 정해미 선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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