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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름표 달고 ‘갑질’ 하는 집사님

기사승인 [1468호] 2019.01.07  16: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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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봅시다- 신앙인과 컴플레인

화를 ‘잘’ 내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덕목

교회 동생 A는 누가 봐도 기독교 색채가 드러나는 이름의 회사를 다닌다. A는 지난해 연말 직원회식 자리에서 경악할 만한 장면을 목격했다. ‘회사 이름’으로 식당을 예약 하고 당일이 되어 직원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데, 서빙이 늦어진 것. 그러자 직원 두 세 사람이 식당 종업원에게 컴플레인을 걸기 시작했다. “여기는 왜 이렇게 일을 하느냐”, “우리는 이렇게 앉고 싶은데 왜 자리 배치를 이렇게 했느냐”, “비싼 돈 주고 먹는데 서비스가 왜 이러느냐” 등 짜증 섞인 말투로 그야말로 종업원을 잡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서비스가 좋지 않았다는 점은 A도 인정하는 바였지만 교회 ‘장로’이고 ‘집사’라는 사람들이 어린 종업원에게 하대하며 항의 하는 모습이 무척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A는 내게 “종업원 입장에서 누가 봐도 기독교인이라는 걸 알 텐데 이렇게 컴플레인을 걸어도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쉽지 않은 문제다. 기독교인이라 해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컴플레인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돌아보면 나 역시 사람인 까닭에 이런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B장로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사업을 하시는 B장로님은 회사 차량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문구를 붙이고 다니셨다. 어떤 순간에도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겠다는 다짐에서였다. 그런데 새로 온 종업원이 차량을 운행하고부터 신호위반 딱지가 연일 날아왔다. 그는 즉시 차량에 붙은 문구를 떼어 버렸다. ‘예수’의 이름을 달고 덕이 되지 않는 행실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은 예수님을 닮은 성품으로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신앙인의 기초임에 틀림없다. 누가 보건 말건 상관없이 말이다. 최소한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다면 B장로님처럼 이름표를 떼버리는 게 차라리 낫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 구원과 함께 책임을 함께 부여 받았다. 올해로 100세가 된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는 본인의 저서 ‘왜 우리에게 기독교가 필요한가’(두란노)에서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큰 책임을 맡는 것”이라며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사명을 느끼는 것, 그것이 교인의 인생”이라고 말했다.

로마시대에는 ‘저 사람은 너무 이상하게 행동해 그리스도인인가 봐’라는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여기서 이상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손해 보고, 대신 채찍에 맞아 주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화도 내면 안 되는 걸까. 결코 아니다. 오히려 분노할 것에 제대로 분노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일 것이다. 세례요한 역시 불의에 대해서는 헤롯 왕에게까지 거침없이 분노를 쏟아내지 않았는가. 청년사역연구소의 이상갑 목사는 “화, 분노, 저항과 기독교는 공존 불가한 것이 아니다. 다만 화, 분노, 저항의 출처가 욕구, 욕망, 욕심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공의에 기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동준 기자 djson@igoodnews.net

<저작권자 © 아이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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