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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금메달리스트 양영자, 복음의 드라이브 걸다

기사승인 [1472호] 2019.02.12  17: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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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를 치료제로 바꾸는 강력한 복음의 힘 간증
내몽골 선교 15년 마치고 귀국, ‘인생 3막’ 시작

▲ 탁구 금메달리스트에서 돌연 몽골 선교사로 남편과 함께 떠났던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와 인생 제3막을 시작했다. 그녀는 여전히 한손에는 라켓을, 한손에는 복음을 들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에서 자신을 던지고 있다. 사진은 최근 열린 ‘주라 그리하면 채우리라’ 기자간담회에서 작가 전광 목사(오른쪽)와 함께.

복음이 강력한 건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환경이나 상황이 바뀌지 않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이 변화하면 놀라운 역설의 역사를 만들어 낸다. 

양영자 선교사의 삶은 역설적인 간증거리로 가득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현정화 선수와 함께 환상의 복식조로 탁구 금메달을 거머쥐었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뒤로 하고 홀연 선교지로 떠났다. 그는 “변화야말로 복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라며 자신의 삶이 가능한 많은 사람을 은혜로 초청하는 하나님의 편지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탁구는 하나님의 선물

예수를 영접하기 전에도 탁구선수 양영자는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그때는 스스로의 기량이 뛰어나서, 그저 ‘나 잘나서’ 성적이 잘 나오는 줄 알았다. 성경을 읽고난 후에는 각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재능이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았다. 그때부터 가치관이 바뀌기 시작했다. 

“예수를 알기 전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보며 배도 아프고 질투도 났어요.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는 각 사람이 받은 소질에 따라 최선을 다할 때가 가장 멋있고, 그 모습이 하나님이 아름답게 쓰시는 걸작품인 걸 알기에 기꺼이 박수가 나옵니다. 예수를 믿기 전 명예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면 이후엔 탁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어졌지요.”

탁구라는 선물은 그로 하여금 복음 전도자의 꿈도 꾸게 했다. 때는 1986년, 세계 최강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땄던 아시안게임이 폐막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갑작스럽게 간수치가 올라가 병원에 50일이나 입원을 해야 했다. 한 달가량 병원 생활을 이어가던 중 중국(당시 중공)에서 시합 개최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북한 선교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당시엔 중국 선교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던 사람이 많았어요. 저도 그 중 하나였지요. 제 첫사랑이 중국 사람이었던 것도 한 이유였습니다. 언제든지 문이 열리면 가서 전도지를 나누고 싶었기에 반드시 대회에 가야 했어요. 의사에게 말했더니 펄쩍 뛰더라고요. 안 된다고요. 4종목 중에 1종목만 뛰고 링거까지 들고 간다는 조건으로 중국행을 감행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에 도착한 그는 계획대로 대회장에서 사인회를 빙자해(?) 전도지를 나눴다. 사람들이 기피하지 않을까 했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아시안게임에서 탁구 금메달을 딴 양영자는 중국에서 그야말로 ‘스타’였다. 동료 크리스천 선수인 현정화, 유남규 선수도 함께 전도지를 나눴으니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대박’이었다. 

“2001년 상해일보 통계를 보면 중국에는 등록된 탁구 인구만 2,600만이 넘습니다. 탁구는 중국의 자존심이죠. 큰 체육관에 가득한 사람들은 24시간씩 기차를 타고 온 열성팬들이었어요. 저희가 나눠준 전도지를 기쁘게 받아들고 가서 친구며 동료들까지 데려와서 전도지를 나눠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때 생각을 했지요. 이렇게도 선교를 할 수 있구나. ‘나는 은퇴 이후에도 탁구를 통해서 복음을 전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 계기였지요.”
 

선교가 현실이 되다

88년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 했다. 은퇴를 하자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았다. 제2의 삶이 시작되던 시점이었지만 그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것이 방황의 시초였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경험만 가지고 선수들을 지도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론과 실기를 겸해야겠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할 무렵 환갑을 갓 넘긴 어머니가 간암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깊은 우울증이 그녀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아침에 해가 뜨는 것조차 싫었다. 환청이 들리고 거식증까지 생겼다. 

깊은 우울의 동굴에서 그녀를 끄집어낸 건 말씀이었다. 김양재 집사(현 우리들교회 담임목사)가 하던 말씀 묵상훈련에 참여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양 선교사는 “말씀의 광채가 날 비추기 시작했을 때 회복이 시작됐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남편 이영철 선교사를 만나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룬 것도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 남편은 양 선교사를 우울증에서 끌어올려주려고 부단히 애썼다. 아침마다 함께 경건의 시간을 갖고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드렸다. 

양 선교사의 마음에 말씀의 평안이 찾아왔을 무렵 선교사를 꿈꾸던 남편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결혼한 지 4년만인 1996년 두 사람은 WEC 선교사로 몽골 선교지로 떠났다. 

몽골어로 성경번역을 하는 것이 부부의 주 사역이였다. 그렇게 15년, 양영자 선교사는 남편의 성경번역이 끝날 때까지 몽골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물론 탁구를 통한 사역도 놓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86년 중국 대회에서 전도지를 나눠줄 때, 탁구로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선교사가 될 줄은 몰랐어요. 탁구가 있었기에 현지에서 비자도 받을 수 있었고 남편도 성경번역을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죠. 다시 생각해도 탁구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귀한 사역의 도구이자 선물입니다.”
 

▲ 양영자 선교사는 현재 국내에서 탁구 꿈나무들을 복음으로 지도하고 있다.

상처는 별이 됐다

양 선교사는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주라 그리하면 채우리라’(생명의말씀사)를 출간했다. 책에는 그가 겪었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겼다. 책에서 그가 담고자 했던 건 ‘영광의 신앙’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이다. 

책은 양 선교사의 말을 베스트셀러 작가 전광 목사가 글로 적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글을 쓴 전광 목사는 “금메달 연금을 시골 목회자에게 다 돌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지로 떠났다는 기사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며 “8년 전과 5년 전에도 양 선교사를 만나 글로 썼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지만 연이어 거절을 당했다가 이번에 양 선교사에게 부탁을 받고 함께 작업을 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전 목사는 이어 “만약 5년 전에 이 책이 나왔다면 15년의 선교사역을 마친 뒤 인생 3막을 시작하는 지금의 양 선교사 이야기를 담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탁구와 복음의 균형을 다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전체의 글들이 나온 것 같아서 매우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전 목사는 또 “단순히 유명한 금메달리스트라고만 알고 있었던 양영자 선교사의 삶을 인터뷰 하고 글로 적는 과정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이분의 신앙이 더 좋고 매우 도전을 주는 부분이 많았다”면서 “되도록 많은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라고 특히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하나님의 높여주심을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양 선교사는 “내가 겪은 우울증과 조울증, 일련의 아픔들과 이를 회복한 과정을 중점적으로 담고싶었다”며 “조금이라도 우울증이 있고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보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책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손동준 기자 djson@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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