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우리가 함께 사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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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우리가 함께 사는 땅”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9.06.11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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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특집] 호국보훈의 가치, 좌우이념 갈등 속에서 퇴색...이념대립 역사 반복 말아야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고 했다. 호국보훈의 가치는 이념과 무관한 것이며 국가를 위한 선조들의 희생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지난 5월 24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한 묘역에 미군 참전용사가 안장됐다. CNN 등 외신보도에 따르면 이날 장례식의 주인공은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구순(九旬)의 나이에 별세한 헤즈키아 퍼킨스 씨였다. 


이날 장례식에는 건강때문에 유족이 한명도 참석하지 못했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고인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마지막을 지켰다는 점이다. 묘지 직원이 쓸쓸하게 떠나는 고인의 사정을 SNS에 올리자, 참전용사를 추모하기 위해 아기를 안고 참석한 주민까지 있었다. 

미국 국민들에게 참전용사는 이처럼 각별하다. 이라크에서 사망한 병사를 위해 비행기 기장이 승객들에게 함께 추모하자는 방송을 했다거나, 귀향하는 참전용사를 위해 1등석 좌석을 기꺼이 내어준 사업가와 같은 미담이 넘쳐난다. 더구나 SNS가 활발한 세상에서 목격담은 결국 언론에 소개되곤 한다. 미국인들에게는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참전용사를 향한 존중과 배려가 존재하는 것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 대한민국에서 참전용사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호국보훈이라는 용어 자체를 촌스럽게 느끼는 지금 세태를 생각하면, 참전용사 역시 그저 과거 역사로만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모든 것에 대한 이념 편향이 문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더구나 촛불혁명 시대를 거치면서 세대 간 이념갈등이 첨예화 되는 세상에서 ‘호국’과 ‘보훈’ 심지어 ‘태극기’까지 평가절하되는 세태는 무척이나 염려스럽다. 과연 6.25 참전용사가 독거노인이 되어 쓸쓸하게 숨졌다면, 우리 국민들은 묘역까지 몇 명이나 달려올지 자못 궁금하다.  

인터넷에서 정치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면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국민 한사람이 지지하는 정당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좋아하는 정치인도 다를 수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뉴스마다 올라오는 네티즌은 생각이 다른 것만으로도 날선 공격의 칼날을 쏟아낸다. 정치인들의 이름을 폄하하는 표현 정도는 차라리 이해가 될 정도. 문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확산되어만 가는 이념 확증편향이다. 아무리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친북세력 내지는 보수꼴통으로 몰아세우며 성숙한 담론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국민들 서로가 서로를 양 극단으로 몰아세우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소모적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교회 공간에서는 소재 자체로 꺼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조심스럽다. ‘이게 나라입니까’라는 질문이 좌측과 우측을 넘나들고 있다. 

무엇보다 이념적 갈등 때문에 세대 간에 빚어지는 불통은 심각하다. 참전용사들이 태극기가 새겨진 모자를 쓰거나 훈장을 달고 있다 하더라도 젊은이들은 인식하지 못하거나 거부감을 표하기도 한다. 

기독교통일학회장 안인섭 교수(총신대)는 “전쟁을 경험했던 세대들은 전쟁에 대한 기억을 갖고 힘겨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다음세대는 참전용사와 역사를 존중하고 희화화 하지 않아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전했다.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존재의 표현

‘전쟁이 일어난다면 참전하겠다’고 답한 10대가 10명 중 6명에 불과하다는 통계조사를 보면 국가 미래를 걱정해야 할 처지인 것은 분명하다. 


호국보훈이 보수적 가치로만 여겨진다면 국가 정체성의 근간이 흔들리게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과 프랑스 등 선진국가일수록 호국보훈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주의 국가도 나라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한다. 

보훈교육원장을 지낸 오일환 교수(숭실대)는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분들의 희생정신을 다음세대가 기억하고, 그 분들이 남긴 ‘초과의무’를 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며 “호국보훈은 기독교 정신과도 맥락이 닿아 있는 가치”라고 설명했다. 호국보훈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인식되는 것처럼 보수적 가치만은 아닌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치성향과도 무관하며,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적 손길을 초래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이념 갈등은 1945년 해방 이후 격동의 시기에도 첨예했다. 미군정의 신탁통치를 찬성하고 반대하는 것을 두고 무력충돌이 빚어졌다. 소모적 이념갈등 때문에 친일청산이라는 민족의 과제는 지금껏 후유증으로 남아 있고, 끝내 분단을 막지 못했으며 김구 등과 같은 민족 지도자들이 희생됐다. 

결국은 남북은 분단의 길을 가야했고, 동족끼리 목숨을 뺏고 빼앗는 참상을 겪어야 했다. 역사는 퇴보하고 말았다. 

“학교와 가정에서 역사교육 강화돼야”
우리 사회에서 호국 보훈의 가치가 갈수록 희석되어가는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2013년 초등학생 1,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초등학생 69%는 6.25전쟁이 ‘북침’이라고 답해 충격을 전해주었다. 

민족 최대의 비극적 역사를 초등학생들은 몰랐고, 그들이 이제 대학생이 되는 나이이다. 그동안 역사인식 교육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지 않았던 것을 고려하면, 인식개선에 있어서 진척이 있진 않았다. 

실제 초등학생 고학년들에게 물어보아도 8.15 해방과 6.25전쟁이 정확하게 일어난 연도를 알지 못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군부독재 영향 아래 자발적 호국보훈을 경험하지 못한 국민들의 저항감도 있다. 안보를 무기삼아 국민을 통제하려 했던 추억은 거부감을 들게 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국민들이 스스로 애국의 가치를 깨닫고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 지금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해법은 역사를 가르치고 기념하는 교육에서 출발해야 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던 날을 기념해 유월절을 지키는 것처럼 잊지 않아야 할 역사가 있다. 나라를 잃어 수많은 국민을 희생해 봤던 이스라엘은 망국의 역사를 기억하고 가르치기 위해 자녀들을 ‘마사다’와 같은 곳으로 캠프를 의무적으로 보낸다. 

오일환 교수는 “전쟁이 일어나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먹고 사는 문제보다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안보 현실을 지나치게 무감각하게 여기는 국민들을 일깨워야 하며, 이긴 전쟁이라도 존재하게 되는 희생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면서 “학교와 가정에서 전승교육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안인섭 교수는 “국가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우리가 사는 땅으로,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을 명예롭게 생각하며 한다”면서 “과거의 비극적 역사가 비록 있었지만 과거와 현재가 만나 미래로 나가아는 진전을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희망을 강조했다. 

안 교수는 “5~7천만명이 희생된 2차 세계대전을 치른 독일이 상대국이었던 프랑스와 영국, 미국과 함께 서방국가로 함께하게 된 것은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지향적 성숙을 이루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 “대한민국도 호국보훈의 가치를 되새기면서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미래가 만들어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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