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잊지 말아야 할 은인 '피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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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잊지 말아야 할 은인 '피득'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08.2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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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교총, 구약성경 번역자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 심포지엄 개최
권서로 활동하며 '시편촬요'와 '개역구약성경' 등 펴내
▲ 한국교회총연합이 주최하고 한교총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 및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가 주관한 '한국교회가 기억해야 할 구약성경 번역자 알렉산더 A.피터스 목사' 심포지엄이 22일 새문안교회 새문안홀에서 진행됐다.

한국교회가 묻혀져 있던 은인 알렉산더 피터스, ‘피득’ 목사를 역사 속에서 끄집어 내 선교와 교육의 모범으로 삼는 작업에 나섰다.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이승희·박종철·김성복)은 22일 새문안교회 새문안홀에서 ‘한국교회가 기억해야 할 구약성경 번역자 알렉산더 A. 피터스 목사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박준서 목사(연세대학교 구약학 명예교수)는 신약성경 최초 한글 번역자인 로스 선교사에 비해 피터스 목사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상황을 설명하며 “그는 1898년 시편의 일부를 한글로 번역해 시편촬요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로서 우리 민족은 열사상 처음으로 구약성경의 말씀을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피터스 목사는 1871년 러시아(오늘날이 우크라이나에 해당)의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고, 어려서부터 히브리어를 배워 능통했다.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더 나은 삶을 찾아 일본까지 가게 됐다. 그곳에서 그는 미국인 선교사를 만나 크리스천이 됐다. 1895년 24살의 청년 피터스는 미국성서공회의 권고로 권서(성경을 팔며 전도하는 사람)의 자격으로 한국에 오게 됐다. 이후 전국을 다니며 쪽복음을 전했고 특출한 어학능력으로 2년만에 한국어를 통달한다. 한글로 된 구약성경이 없던 시절, 피터스는 권서 일을 하며 틈틈이 애송하던 시편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1898년 ‘시편촬요’를 출간했다. 

박준서 목사는 “당시 구약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할 사람이 꼭 필요한 때에 하나님은 최적의 인물을 한국 땅으로 보내주셨다”며 “이후 40년이 지난 1938년 개역구약성경을 완결시킴으로서 구약성경 한글 번역의 성업을 마무리 지었다”고 설명했다.

피터스 목사의 업적은 단순히 구약의 한글 번역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당시 한국교회 안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의 문제를 개역구약성경에서 ‘하나님’으로 표기해 논쟁의 종지부를 찍은 사람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 사용하는 구약성경 또한 피터스 목사의 ‘개역구약성경’을 기초로 표준맞춤법에 따라 고치고 고어 문체 등을 수정한 것이다. 

▲ 한국 이름 '피덕', 알렉산더 A. 피터스 목사는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피터스 목사는 한국교회에서 잊혀진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는 1941년 70세에 은퇴하여 1958년에 로스엔젤레스 근교 패서디나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소천했다. 박 목사는 “그의 공적을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미국에서 말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묘소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동분서주한 끝에 그의 묘소를 찾아냈지만 그곳에는 기념비는 고사하고 작은 묘비조차 없었다”며 “한국교회의 은인의 묘소는 무연고자의 것처럼 초라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묘소를 찾아낸 뒤 부끄러운 자괴감으로 한동안 머리를 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행인 점은 2017년 그를 기리기 위한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가 발족됐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피터스 목사의 묘소에 공적이 적힌 ‘기념동판’이 세워졌고 매주 그의 묘소에 꽃을 헌화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박 목사는 “피터스 목사를 기념하는 일은 신앙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사적, 선교적 차원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뜻깊은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에 한국교회 성도들 모두가 참여하여 힘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어진 발제에서 증산로교회 주강식 목사는 ‘한글 성경이 한국 교회와 사회에 끼친 영향’을 발표했다. 주 목사는 한글 성경으로 인해 교회의 성장과 지도자 양성에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영역에서도 한글의 재발견과 국문학의 발전, 개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한교총 상임회장 림형석 목사(예장 통합 총회장)는 “피터스 목사는 결코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며 “그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부주의와 사려 깊지 못한 역사의식때문이 아닌가 반성해본다”고 말했다. 림 목사는 특히 “피득 목사님은 우리가 자주 부르는 ‘눈을 들어 산을 보니’와 ‘주여 우리 무리를’같은 찬송시 여러 곡의 작사자”라고 소개하며 “만약 이 분이 우리 한국교회에 작사료를 달라고 주장했다면 한국교회는 상당히 많은 비용을 지급해야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 앞서 진행된 개회식에서는 기성 총무 김진호 목사의 사회로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안성삼 목사가 인사를, 예장 통합 총회장 림형석 목사가 격려사를 전했다. 서울 바하 합창단은 피터스 목사가 노랫말을 쓴 곡들을 모아 '피터스 목사의 찬송 메들리'를 불러 박수 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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