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장애아동을 키우려면 온 교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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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장애아동을 키우려면 온 교회가”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4.04.26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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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생명으로 (11) 교회는 장애아동을 위한 ‘지지체계’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만약 그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면? 고작 마을 정도가 아니라 도시, 어쩌면 국가까지 나서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장애아동 양육으로 인한 어려움은 대부분 그 가족들이 떠안고 힘겹게 고개를 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가 살면서 겪을 어려움은 감히 섣부른 예측을 하기도 조심스럽다. 그런데 장애아동을 돌보는 가정 또한 만만치 않은 부담을 안아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아동의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혹은 함께 어려움을 감수할 가족조차 있지 않은 장애아동의 삶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이들이 안고 있는 어려움과 필요한 대책,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조명해봤다.

장애자녀를 둔 부모의 고충

가장 큰 어려움을 꼽으라면 양육에 대한 부담이다. 성인 장애인들의 경우 주간보호센터와 같은 시설들이 있고 발달장애가 아닌 신체장애라면 한 사람의 어엿한 사회인으로 일하며 제 몫을 해내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돌봄이 필요한 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특수학교에 보내기는 하지만 2~3시 즈음이면 모든 일정이 끝난다. 비장애인 아이처럼 학원에 보낼 수도 없는 경우가 많으니 남은 시간은 오롯이 가족의 몫이다. 그래서일까. 장애인 가정의 경우 조부모까지 3대가 함께 사는 비율이 비장애인에 비해 두 배나 더 많았다. 비장애인 아이들에 비해 가족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 훨씬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장애아동을 양육하는 데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많은 재정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역설적으로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의 수입은 줄어드는 것이 수순이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탓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옮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 의뢰해 발달장애 부모 1,174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장애인 구성원이 1인 이상인 가구의 경상소득은 4,246만원으로 전체 가구소득의 72% 수준에 그쳤다. 발달장애 자녀를 돌보기 위해 둘 중 한 명이라도 직장을 그만둔 비율은 5명 중 1명(20.5%)이나 됐다.

열악한 환경에도 지원 대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장애인 가족이라 한들 차상위계층 이하 저소득가구가 아니라면 유의미한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애아동에게 지급되는 양육수당은 비장애아동과 거의 유사한 수준이다. 장애아동 돌봄에는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하지만 정책에서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용 지원이 쉽지 않다면 시간이라도 보장되어야 하건만 그마저도 갈 길이 멀다. 가족 돌봄 휴직·휴가 제도, 가족 돌봄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제도에 장애 자녀를 고려한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돌봄인력을 장애아동 가정에 파견하는 사업이 마련돼 있지만 장애 정도가 중증이면서 가구소득이 중위소득의 120% 이내여야 전액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제한이 걸려 있다.

어려움은 비단 재정적인 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장애아동을 낳은 후 자녀의 장애가 부모의 잘못일지 모른다고 스스로 탓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부모들도 있다. 장애아동과 비장애인 형제자매가 함께 있는 경우 장애아동에게 관심이 쏠려 비장애인 자녀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교회가 ‘지지체계’ 돼야

바닥 밑에 바닥이 있다고 했던가. 장애아동을 돌보는 가족의 삶도 만만치 않은데 더 심각한 문제는 가족이라는 지지체계마저 무너졌을 때다. 안타깝게도 모든 부모들이 내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무한한 애정과 책임을 품지는 않는다. 장애아동의 탄생으로 인해 부모가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돌봄을 포기해 시설에 맡겨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장 가까운 내 편인 가정에마저 기댈 수 없는 장애아동들은 거센 풍파 속에서 나룻배 하나 의지한 위태로운 모양새다.

밀알선교단 조병성 목사는 “중학생 자폐성 장애가 있는 친구가 있었다. 아빠는 지체장애가 있었는데 심장 질환으로 돌아가셨고 엄마는 지적장애인이었다. 하루는 엄마가 샤워를 하다 쓰러졌는데 자폐를 가진 아이는 그게 무슨 상황인지조차 몰랐다. 활동지원사가 아침에 올 때까지 샤워기에 뜨거운 물이 틀어진 채로 방치돼있었다. 결국 돌아가셨고 아이는 홀로 남게 됐다”고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조병성 목사는 지지체계가 무너져 홀로 남겨진 장애아동을 교회가 책임지고 버팀목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실제로 부모님한테 버려진 지적장애 아동 한 명이 당뇨가 심해 집 앞에 쓰러진 일이 있었다. 이웃이 발견해 병원에 입원하긴 했지만 관리가 되지 않았다. 다행히 출석하던 교회의 청년부에서 병원을 교회 근처로 옮기고 돌봤다. 밀알선교단에서도 밀알복지재단을 통해 긴급구호를 신청하고 재정을 지원할 계획이다.

다만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일이 대처하는 움직임만으론 한계가 있다. 모든 교회들이 위 사례와 같이 적극적인 돌봄에 나서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조병성 목사는 장애아동 돌봄을 위한 시스템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움이 필요한 장애아동과 그 가정을 위해 언제든 지원할 준비가 돼 있는 거점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 목사는 “밀알선교단과 같은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지역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번 사례의 경우엔 가까이 있는 지역교회가 곁에서 돌보는 역할을 맡았고 전문성을 갖춘 밀알선교단은 자문하며 밀알복지재단과 연계해 재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장점을 살려 사역을 함께 하면 양쪽 모두 부담을 덜 수 있다. 장애아동을 위해 교회가 든든한 지지체계가 되어주길 소망한다”고 당부했다.

 

진짜 가족이 되어주길

다행히 법과 제도도 조금씩 개선되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1:1 돌봄 체계를 구축해 낮 활동 지원과 주거지원을 결합한 24시간 지원 체계를 마련한다. 기존에 몇몇 지자체에서 시범 사업으로 진행됐던 24시간 돌봄을 전국으로 확대해 17개 시도에서 340을 대상으로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24시간 돌봄 지원은 장애아동을 둔 가정의 한줄기 빛이다. 1:1로 돌봄이 진행되기 때문에 장애의 특수성에 대해 잘 이해하고 맞춰줄 수 있다. 시범사업에서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이용했던 한 부모는 “이전엔 센터에 맡겨도 아이가 특이한 행동을 하면 연락을 받고 불려 나가 뒷수습을 하느라 일상생활을 거의 할 수 없었다. 하지만 1:1로 활동지원사가 붙고 나니 그런 일이 없어졌다. 이제는 주거코치가 한 공간에서 지내며 딸을 독립시키는 도전도 조심스럽게 시도해보려 한다”고 전했다.

중증 장애아동 돌봄 시스템도 강화된다.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던 장애인 가족 양육지원 사업은 기존 478억원에서 올해 549억원으로 14.8% 증액된다. 장애아 돌봄 시간도 연 960시간(월 80시간)에서 연 1,080시간(월 90시간)으로 늘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장애아동 가족을 위한 지원의 시급함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신호다.

교회에서는 장애아동 부모를 위한 공동체를 만들고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큰 힘이 된다. 조병성 목사는 “밀알선교단과 동역하는 교회들은 한 달에 한 번 장애아동 부모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 많이 있다. 교육을 통해 장애아동 육아에 꼭 필요한 정보도 듣고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이 모여 정보도 공유하고 말씀도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위로를 받는다. 외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장애아동을 교회 공동체의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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