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 연고지 없던 청년 MK 주거문제 “콤케드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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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 연고지 없던 청년 MK 주거문제 “콤케드가 함께 합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4.04.26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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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KED, 6개 지역 38개 호실 ‘콤콤하우스’ 개설
19세 이상 MK라면 누구나, 직장인·취준생에 우선
이사 걱정 없이 맘껏 꿈꿀 수 있는 안정적 주거

부천 춘의역에서 내려 단 1분이면 도착하는 신축 오피스텔. 교통도 편리하고 시설도 깔끔한 이곳은 한국선교사자녀교육개발원(KOMKED)이 선교사 자녀(MK)들을 위해 마련한 콤콤하우스다. 12층과 13층에 걸쳐 마련된 22개 호실엔 선교지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MK들이 새 삶을 꾸려가는 중이다.

일생을 부모를 따라 선교지에서 보내다 학업이나 취업을 이유로 낯선 고국을 찾은 MK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다름 아닌 집. 한국에 거처가 없다 보니 친척집을 전전하거나 기숙사와 학사관에 신세를 지는 것이 일상이다. 그마저도 ‘학생’이라는 이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나면 대부분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고 만다. 이를 위해 콤케드는 청년 MK들이 맘 놓고 쉴 수 있는 거처, 콤콤하우스를 만들었다. 지난 17일 춘의 콤콤하우스를 찾아 콤케드 강평강 한국본부장과 MK들을 만났다.

콤콤하우스는 단순히 거처의 의미를 넘어 MK 공동체로서의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사진은 콤콤하우스에 입주한 MK들의 모습.
콤콤하우스는 단순히 거처의 의미를 넘어 MK 공동체로서의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사진은 콤콤하우스에 입주한 MK들의 모습.

처음 생긴 내 집

아버지는 특수학교 교사, 어머니는 선교사 아카데미 교사로 일하셨다. 한국이 아닌 이국땅 필리핀 마닐라에서다. 어린 나이의 심효영 청년은 그런 부모님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비량 선교사로 사역하셨던 탓에 주머니가 묵직했던 기억이 없다. 교통비를 아끼려 동생과 함께 그 더운 나라에서 걸어 다니다 더위를 먹고 쓰러진 일도 있었다. 자연재해는 예삿일이고 총기 강도를 당하기도 했다. 직접 선교를 경험한 지금은 섬기는 삶이 얼마나 귀한지 깨달았지만 그때는 왜 사서 고생을 하셔야만 했는지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대학 입학을 위해 한국에 와서도 고생길은 끝나지 않았다. 심 청년은 “한국에 들어와서 스무살에 지하철을 처음 타봤다. 막 들어왔을 땐 휴대폰도 없어서 외국인 관광객마냥 지하철 노선도를 들고 다니며 길을 찾았다. 드라마에서 볼 땐 한국이 정이 많다고 했는데 길을 물어도 잘 안 알려주시더라”며 추억을 떠올렸다.

더 큰 문제는 집이었다. 처음엔 친척들 집에서 얹혀살았고 선교단체 동아리에서 운영하는 ‘사랑방’과 교회 학사관을 전전했다. 대학 시절에 이사한 횟수만 꼽아도 한 손으로 다 세지 못한다. 그랬기에 콤콤하우스가 열린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기뻤다. 지난해 8월 입주한 뒤 끝나지 않을 고민일 것만 같았던 주거 걱정은 덜게 됐다.

차소망 청년에게 콤콤하우스는 처음으로 생긴 자기만의 공간이다. 선교지에 있을 땐 사역으로 인해 2년에 한 번은 주거를 옮겨야 했고 독립적인 공간은 꿈꾸기 힘들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대학교 기숙사에 지낼 땐 언제나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해야 했다.

그는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기숙사는 룸메이트와 함께 써야 하고 믿지 않는 친구들인 경우가 많았다.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듣고 있는 친구에게 기도를 해야 하니 볼륨을 줄여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면서 “혼자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너무 좋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보컬 전공으로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차소망 청년은 찬양사역자나 뮤지컬 배우의 진로를 꿈꾸며 기도하고 있다. 이렇게 마음 놓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것도 안정적인 주거 환경이 바탕이 된 덕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콤콤하우스를 통해 주거가 생기고 나니 안정을 찾았고 다른 비전과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전했다.

춘의 콤콤하우스 내부.
춘의 콤콤하우스 내부.

콤콤하우스에서 가족이 되다

콤케드가 운영하고 있는 콤콤하우스는 서울 회기, 마포, 아현, 디엠씨, 수도권에 춘의, 평촌, 가평 등 7개 지역 39개 호실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춘의는 가장 큰 규모인 22개 호실을 운영하고 있다. 신실한 크리스천인 콤케드 이사들과 건설사의 협력으로 MK들은 시세에 비해 약 절반의 가격에 콤콤하우스를 이용할 수 있다.

처음엔 그저 MK들에게 너무도 시급한 주거를 하루빨리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생각지도 못한 시너지 효과가 생겨났다. 가장 눈에 띄는 효과는 콤콤하우스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MK들의 공동체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춘의 콤콤하우스에 모인 22명의 MK들은 이미 하나의 가족이나 다름없다. 무언가 대단하고 특별한 활동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주말에 모여 보드게임을 하거나 서로의 집에 놀러가 취향대로 꾸민 인테리어를 구경하며 수다를 떤다. 저녁 무렵이면 테라스에서 환상적인 노을을 함께 바라보는 소소한 즐거움도 나눈다. 공감대를 공유한 MK들이 가족으로 하나가 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다.

콤케드 강평강 본부장은 “요즘 들어 학업, 특히 취업을 한국에서 하려는 MK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영성 충만한 선교사 가정에서 자라다가 한국에서 기업을 다니며 세상의 치열한 문화를 맞닥뜨렸을 때 어려워하는 MK들이 있다”면서 “최근에는 자매 MK 중 한 명이 갑상선 암에 걸린 적이 있다. 그때 다른 MK들이 병문안을 가서 위로하고 기도했다”고 소개했다.

MK들이 삶을 나누며 영성을 회복하기 위한 자리도 만들었다. 콤케드는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PRAIN Worship’이라는 이름의 기도회를 진행한다. ‘PRAIN’이라는 독특한 이름에는 ‘Pray in’, ‘Pray again’, ‘Pray rain’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콤콤하우스에 입주한 청년들은 화요 저녁 기도회에 참석해 지친 일상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진다. 풋살 모임과 북클럽, 클라이밍 동아리 등 취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장도 마련했다.

부모 선교사들의 거점이 된다는 것도 콤콤하우스가 생각지 못한 시너지 효과다. 선교지에 머물다 한국에 돌아온 선교사들은 거처가 없어 선교관 등을 찾게 된다. 하지만 자녀가 콤콤하우스에 거주하고 있다면 한시름 내려놓는다.

강평강 본부장은 “콤케드에서 진행하는 ‘MK 리더십 캠프’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중·고등학생 MK들이 종종 놀러오는 아지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청소년 MK들에게도 콤콤하우스는 주거 걱정없이 안정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는 희망이자 모델이 된다”면서 “콤콤하우스 입주를 통해 MK 사역을 알게 되고 동역자로 함께 하는 MK들이 많아진 것도 수확”이라고 덧붙였다.

콤케드가 MK들을 위해 마련한 화요 기도회 'Prain Worship'에 참여한 MK들.
콤케드가 MK들을 위해 마련한 화요 기도회 'Prain Worship'에 참여한 MK들.

모두를 위한 콤콤하우스

콤콤하우스 입주에는 특별한 자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만 19세 이상의 선교사 자녀이기만 하면 신청할 수 있다. 다만 그중에서도 직장인과 취업준비생 MK들에게 우선권을 준다. 그나마 기숙사나 학사관 등의 제도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대학생 신분에 비해 직장인 MK들은 취약한 환경에 노출돼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청년들을 위한 주거 정책을 적잖이 내놓고 있지만 MK 청년들은 사각지대에 있다. 특정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든가 청약통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들을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MK들이 갖추기가 쉽지 않은 것이 원인이다. 애당초 공공 정책을 접할 창구 자체도 적고 지원에 필요한 서류를 구비하는 것에도 서툰 이들이 많다.

그래서 콤콤하우스는 철저히 이용하는 MK들의 편의에 초점을 맞췄다. 입주 기한에 제한을 두지 않다는 점은 다른 선교관, 학사관 등과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다.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계약을 하지만 재계약 여부는 철저히 입주자의 의사에 의해 결정된다. 잠깐 머물다 기한이 다가오면 다시 집을 구해야 된다는 생각에 맘을 졸여야 하는 임시 숙소가 아니라 MK들이 마음 놓고 머물며 꿈을 펼칠 수 있는 ‘내 집’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MK들의 아늑한 안식처가 되고 있지만 콤콤하우스는 보다 더 큰 꿈을 꾼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39개 호실에서 50개 호실, 나아가 100개 호실까지 운영하는 것이 콤케드가 꿈꾸는 비전이다. 그 꿈이 이뤄지면 사역의 범위도 MK를 넘어선다.

강평강 본부장은 “콤콤하우스가 더 넉넉하게 확보된다면 MK들만이 아닌 취약계층 청년들, 북한이탈주민 등에게도 사역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면서 “MK들이 MK만의 울타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우리 사역의 목표는 아니다. MK들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통해 회복된 MK들이 한국교회와 선교, 나아가 사회와 열방에 이르기까지 선한 영향력을 발하는 것이 콤케드의 비전”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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