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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스 이후의 스코틀랜드

기사승인 [1496호] 2019.08.13  1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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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9)

칼뱅의 제자이며 낙스의 후계자로 앤드루 멜빌이 등장하였습니다. 멜빌이 스코틀랜드에 돌아오자 베자는 “제네바 교회가 스코틀랜드에 보여줄 가장 큰사랑의 표시는 앤드류 멜빌이다.”라고 편지하였습니다. 멜빌은 스코틀랜드에 귀국한 후 글래스고우 대학교의 총장에, 1580년에는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 총장에 부임하였습니다.

그는 제네바식 교육 행정, 교과 과정, 교수법을 스코틀랜드에 소개하여 대학 교육 제도를 크게 개선하였을 뿐 아니라, 낙스의 제1치리서를 1578년 개정하여 제2치리서를 만들었습니다. 멜빌은 제2치리서를 통해 보다 더 성경에 가까운 장로 정치를 실시하고자 하였습니다.  

장로교 교육을 받은 제임스 6세가 영국에서 제임스 1세로 즉위하자마자 영국의 청교도는 물론 스코틀랜드 장로교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임스도 그의 어머니가 지지해온 왕권신수설을 신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대의 정치는 왕권신수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마찰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멜빌은 제임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전에 여러 번 말씀드린 것과 같이 지금도 말씀드립니다. 스코틀랜드에는 두 개의 왕국이 있고, 두 명의 왕이 있습니다. 이 나라의 머리인 제임스 왕과 교회의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임스 왕은 그리스도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왕국에서는 왕도, 주도, 머리도 아니고, 하나의 지체일 뿐입니다. 우리는 귀하를 왕으로 섬기며, 귀하에게 합당한 예의로 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귀하는 교회의 머리가 아닙니다.”

제임스는 멜빌을 런던탑에 4년 동안 가두었다가 영국에서 추방하였습니다. 멜빌은 1611년 영국에서 추방되어 프랑스 세단으로 갔고, 거기에서 신학생들을 양육하다가 1622년 사망했습니다. 제임스 1세는 앤드류 멜빌을 추방한지 얼마 지난 1618년 스팟티스우드를 스코틀랜드 장로교 총회에 파송하여 ‘퍼스 5개 신조’를 채용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퍼스 5개 신조’의 내용은 ① 성찬을 받을 때 무릎을 꿇을 것, ② 성일(聖日)을 엄수할 것, ③ 감독 교회식의 견신례를 집행할 것, ④ 개인적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 ⑤ 개인적으로 성찬을 베푸는 것을 중심 사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임스의 정책은 멜빌의 영적 지도를 받던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의 저항을 초래하였고, 종교적인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제임스의 사망 후 찰스 1세가 통치하면서 스코틀랜드 교회는 더 힘든 수난을 맞게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1637년 7월 23일부터 장로교회가 폐지되고 성공회 의식대로 예배가 드려지도록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날에 아주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에든버러의 사제장이 세인트 자일스 교회당에서 성공회 의식을 따라 예배를 집전하려고 할 때, 제니 겟즈라는 여인이 큰소리를 지르면서 사제장을 향하여 의자를 집어던지는 소동을 폈습니다.

이 사건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도들을 봉기시켰고, 장로교회들은 찰스의 종교 정책에 항의하면서 장로 정치의 수호에 목숨을 걸 것을 서약하였습니다. 그들은 에든버러의 그레이 프라야 교회당에 모여 장로교회 정치와 예배를 사수할 것을 결의하고, 찰스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국가 계약을 맺었습니다.

평안교회 담임

황의봉 목사 igoodnews@igoodnews.net

<저작권자 © 아이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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