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도 누군가 다 지켜보고 있다
상태바
교회에서도 누군가 다 지켜보고 있다
  • 노경실 작가
  • 승인 2020.08.25 14: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107

데살로니가전서 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간증을 듣노라면 이런 고백을 자주 듣게 된다.

-다 망하고 너무 힘들어서 죽으려고 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교회 생각이 나는 거예요. 교회는 어릴 때 성탄절 때 가 본 게 전부였거든요. 마침 그 날이 금요일 밤이라 교회를 갔더니 사람들이 큰소리로 기도를 하고... 그래서 그 날 하나님을 만났고 이제는 새 인생을 살지요.

- 집사람이 나한테 그리 모진 핍박과 냉대를 받아도 교회를 가는 거지 뭐에요. 그래서 하루는 큰 맘 먹고 뒤를 좇아갔지요. 아예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들려고요. 그래서 난생 처음 가 본 교회의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찬송가 부르는 소리에 그만.. ... 지금은 내가 집사람보다 더 강력한 크리스천이 됐답니다.

- 회사에서 짤린 날, 죽을 정도로 술을 마셨지요. 그리고 집에 간다고 갔는데,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내가 교회 의자에 누워 있고, 사람들이 새벽기도 하러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내가 교회라고는 딱 3번 초등학교 때 다닌 것 외에는 없는데 나도 모르게 교회로 온 겁니다. 이래서 먼지도 교회 먼지라도 묻으면 달라지나 봅니다.

이런 식의 간증은 셀 수 없이 많다. 너무 힘들고 슬퍼서, 아니면 화가 나고 분이 차서 교회를 찾은 사람들. 마지막으로 한번만 하나님과 담판 짓겠다고, 나 좀 살려달라고, 또는 무의식 중에 아무 의도 없이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된 사람들. 누군가에 끌려오다시피 해서 나온 사람들, 빚쟁이 잡으러 온 사람들, 애인 구하러 한번 스윽 들린 사람들, 교회 흠을 집어내서 무언가 이익을 보려고 온 사람들. 그 동기가 어떠하든 교회와 예배의 자리에 나온 사람들은 놀랍게도 하나님을 만났다. 

그런데 우한폐렴이후로, 즉 현장예배가 금지되고 등록 교인만 출입이 가능한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 이런 드라마틱한 간증은 들을 수도, 나올 수도 없다. 또, 이런 상황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을 일어나게 하고 있다. 이건 나의 체험담이다.

지난 8월 첫 번째 주일 예배를 앞둔 토요일 저녁. 나는 부목사님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전도한 A씨가 다음 주 월요일에 브라질로 갔다가 12월에 다시 한국으로 옵니다. 그래서 브라질로 가기 전에 현장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가능한지요?’ ‘그럼 내일 우리교회에서 예배 드린 다음에 교인등록을 할 수 있나요?’ ‘목사님, 교회 등록이요? 그건 아직... 물론 인터넷으로 담임목사님 설교를 들었지만 그래도 몇 차례 예배를 참석하고. 교회생활도 어느 정도 해 본 뒤에 등록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성도님, 그럼 예배참석이 힘들겠어요. 지금 바이러스 사태로 우리 성도들 외에는 내일 교회 등록하는 분만 예배 참석할 수 있지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는 더 이상 부목사님을 힘들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알겠노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A씨에게 최대한 부드럽게 상황을 전했다.  

사건(?)은 다음 날인 주일에 벌어졌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50대 부부와 장성한 두 자녀, 즉 4식구가 부목사님과 무언가 신중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고보니 그 가족은 처음 우리교회를 방문했는데, 교회 규정상 현장예배 참석을 허락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예배참석을 사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부목사님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감격의 현장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엉? 아니 그 4식구도 예배당 한 쪽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속상했다. 내가 전도한 사람은 한국에서 예배 한번 못 드리고 브라질로 가는데... ... 월요일 오후, 나는 부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말 그대로 ‘나는 당신이(부목사님) 지난여름(어제 주일)에 한 일을 알고 있다(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 1997년 영화)’ 식의 전화였다. -물론 서로 간에 자유롭고 솔직하면서도 예의 가득한 통화임을 밝힌다.- 부목사님은 너무 미안해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 당장 등록하지 않아도 A씨가 현장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참석권(?)을 획득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크게 웃었다. 비리가 또 다른 비리를 낳은 것 같아서! 부목사님이 인정에 끌려 교회 규칙을 어긴 바람에 그 현장을 지켜 본 나에게 들켜서 이번에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상황이 된 것 아닌가! 이럴 때 ‘웃픈’이라고 해야 하나.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기에 성도들은 물론 하나님의 얼굴이 가슴이 아플 정도로 보고픈 시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